연기를 하고 싶었어요.
정말 간절했거든요.

근데 학원비를 달라고는 못 하겠더라고요.
집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.

그러다 MTM 장학생 선발 공고를 봤고,
아역 부문에 지원해서 1등으로 뽑혔어요.
그게 제 연기의 시작이었어요.

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,
누군가에게 처음으로
“너한텐 재능이 있어”
그 말을 들었다는 거예요.
그게 정말 컸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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처음엔 모든 게 벅차고 좋았어요.
촬영장도, 사람들의 기대도요.
근데 그건 오래가지 않았어요.

너무 빨리 현장으로 가고,
너무 빨리 ‘잘해야 하는 사람’이 되었어요.

내 안이 어떤 상태인지도 모른 채
그냥 ‘잘해야 하니까’
‘보여줘야 하니까’
감정을 흉내 내고,
느낌을 따라 하는 연기를 했어요.

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,
연기로 나를 덮고 있었던 거죠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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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이 장면 느낌 살려봐.”
“감정이 더 느껴졌으면 좋겠어.”

그런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
그 느낌이 정확히 뭔지,
어떻게 꺼내는 건지
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.

나만 모르고, 다들 아는 것 같은
비밀 신호 같았어요.

그래서 잘하는 척을 했고,
속은 점점 타들어갔어요.
언제 들킬까, 늘 조마조마했고…
행복했던 연기가
어느 순간부터 두려움이 되었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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결국, 카메라 앞에서 굳어버렸어요.
표현은 했지만,
그 안에 저는 없었어요.

내면이 말라 있었고,
거기서 더는 ‘재능 있는 연기’가 나오지 않았어요.
완전히 소진된 상태였죠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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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동안 멈췄어요.
오디션도, 촬영도, 사람들과의 연락도요.
그냥 마음이 회복되기를 기다렸어요.

쫓기듯 외우던 대사를 내려놓고,
남의 기준에 맞춰 살던 마음을
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.

그게 제 첫 회복이었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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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러다 우연히
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업을 맡게 되었어요.

처음엔 그냥 수업을 진행했는데
아이들을 보면서 자꾸 예전 제 모습이 겹쳐졌어요.
카메라가 무섭지 않았던 때,
마냥 연기가 좋았던 시절.

어느 날 문득, 아이들을 보는데
마음이 아프더라고요.

이 아이들도 언젠가
순수하게 연기를 좋아했던 마음보다
‘잘해야 한다’는 압박이 커져서
연기를 무서워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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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때부터 연기를 가르치는 방식이 달라졌어요.
표현만 가르치지 않았어요.

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,
그 감정 이전의 마음은 어떤지,
그 아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지를
같이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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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,
소진된 성인 연기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.

슬럼프에 빠진 사람들,
자기 연기에 확신을 잃은 사람들.

그들에게도 저는 같은 질문을 던졌어요.
“지금, 어떤 마음을 느끼고 있어요?”

그 마음에서 출발해서
다시 연기를 만들어갔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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연기는 결국,
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꺼내는 작업이에요.
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어요.

하지만 옆에서 기다려주는 사람,
그 감정을 꺼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
있어야 한다고 믿어요.

저는 지금,
그 역할을 하고 싶어요.

왜냐면—
연기가 다시 숨 쉬기 시작하는 그 지점을
저는 알고 있으니까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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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저는 지금,
잘하는 연기보다
‘존재로 하는 연기’를 가르치고 있어요.

내가 정말 필요했던 수업,
그걸 지금은
누군가에게 건네고 있어요.

⸻

아역 연기 수업으로 시작된 이 길이
이제는 배우 클래스, 성인 클래스까지
조금씩 확장되고 있어요.

내가 잃어버린 걸 찾는 여정에서
누군가를 도우면서,
결국 나도 다시 채워졌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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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수업은 결국,
‘마음을 다루는 연기’,
‘기초부터 단단히 쌓는 연기’,
‘진짜 존재로 살아내는 연기’를 위한 과정이에요.

좋은 배우로 성장해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
마음 깊이 기쁘고,
그 여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게
늘 감사해요.

저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배우이자,
진심으로 사람을 보는 교육자로,
오늘도 다시 걸어가고 있어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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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구나 자신의 빛을 발견하도록,
누구도 그 빛을 잃지 않도록.

오늘도, 천천히, 함께합니다.